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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가 볼만 한 곳

국립경주박물관 산책

by marrige 2022. 2. 6.

눈으로 보는 신라문화-

경주국립박물관은 갈 때마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몇 번을 가도 늘 새롭게 느껴지고,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고,

새로운 것을 보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관람한 것 중의 일부를  사진으로 올려본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경주역사유적지구 내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는 신라의 궁궐터인 월성과 월지, 대릉원, 신라의 대가람 황룡사터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불교미술의 보고인 경주 남산이 있다. 

입장하여 내부에서 본 입구의 모습이다. 정원에는 불상이 새겨진 석탑 몸돌이 전시되어 있다. 

느티나무를 소개하고 있는 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도 느티나무를 사용하였다고 적혀 있다. 

석탑 몸돌에 새겨진 사천왕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조각상들은 석탑의 내부에 모셔진 불사리를 받들거나 장엄하여 예배대상으로서 탑의 성격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석탑의 1층 몸돌 네 면에 새겨지는 사방불은 온 세상에 부처님이 계시고 그 가르침이 사방으로 퍼지는 것을 나타낸다.

저 멀리 성덕대왕 신종이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동종. 국보 제29호. 봉덕사종 또는 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동종과 함께 8세기경 금속공예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용뉴의 용은 사실적으로 조각되었고 음통에는 화려한 보상화무늬가 3단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종은 원래 신라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771년 혜공왕 때에 되었다. 봉덕사에 달아, 처음 봉덕사종이라 하였으나 봉덕사는 북천의 홍수로 폐사되어 영묘사로 옮겼다. 그러다가 이 또한 화재로 영묘사가 없어졌으니...

이후 종은 지금의 봉황로. 경주읍성 남문 부근 정례문에 달아놓고 매일 울려 읍성 남문을 여닫는 파루 역할을 하였다. 그러다가 1915년 8월  구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되다가 1975년 현재의 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원래  봉황대옆에 있던 성덕대왕 신종 종각터이다. 

'신라'라는 명칭은 제 22대 지증왕때 확정된 국호이다. 503년(지증마립간 4)에 신라로 확정될 때까지 '사로'·'사라'·'서라벌' 등 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새로운 땅, 해 뜨는 동쪽 나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라 연표를 보면서 유구한 역사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본다.

통일신라가 고려시대로 넘어가는 연표를 볼 수 있다. 

신라역사관은 신라가 기원전 57년 건국한 이래 나라를 안정시키고 기틀을 다져 나간 과정을 보여준다.

1실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신라 건국과 성장, 왕국의 기틀을 다져간 시기의 유물을 볼 수 있다.

토기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인류문명의 획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토기가 발명되기 전에 인류는 물건이나 음식을 보관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토기의 발명은 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일어난 위대한 발명이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벼농사를 하는 농경, 정착사회로 변해간다. 

농경사회로의 변화와 집단 생활, 무기의 발달은 지배계급의 탄생을 가져오게 하였다. 

3세기 중엽 무렵 사로국 중심 낙동강 동쪽 무덤에서 발견된 새 모양 토기. 장례의식 뒤에 무덤에 넣은 듯 한데, 새 모양 토기는 죽어서 천상의 세계로 날아가고픈 당시 사람들의 바람이 깃든 것이 아니겠는가 추측한다.

신라시대 장신구의 발달을 보게 되면, 그 섬세한 가공술이 현대에 못지 않음에 놀라게 된다. 

옥을 가공하여 만든 장신구들. 현대와 다를 것 없는 미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것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경주 교동의 한 무덤에서 도굴되었다가 1972년 압수된 금관. 발견된 6개의 신라 금관 중 가장 오래된 마립간 시기 초기의 것으로 추정한다.  관모는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거나, 특별한 의식을 집행할 때 그 권위를 상징하는 데 나뭇가지 모양으로 한자 ''자 모양이 뚜렸하다. 그 당시 금 세공술이 이 정도로 발달하였다니 놀랍지 않은가! 

신라시대는 황금을 가지고 이렇게 자유롭게 세공할 수 있었던 시대였으며, 황금을 사랑하고 황금은 지배자들에게 곧 권력의 상징으로 나타났다.

신라 금관은 지금까지 모두 6점이 발굴 또는 발견되었다고 하는 데 그저 그 섬세한 가공술과 아름다움에 놀랍기만 하다.

신라는 고구려·백제를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하여 한반도의 주인으로 군림하다가 935년 고려에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경주국립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