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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에서 가볼 만 한 곳6

대전 국립 현충원 방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 포화와 영현 안장 한계로 인하여 1985년에 개장하였다.공주로 가는 길에 있으면, 주위에 계룡산이 있다. 넓이는 3.22km²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모나코의 크기 2㎢ 보다 넓다. 현충원역에서 약 2.2km 정도로, 30분 간격으로 현충원-역 사이를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인 보훈모시미를 타면 편하게 이곳을 들릴 수 있다. 국가원수로는 제10대 최규하대통령과 내외분이 안장되어 있다. 내가 방문할 당시 현충원역 거리에는 '홍범도 로는 우리가 지킨다.'는 현수막이 붙여져 있었는 데, 홍범도 장군도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2023. 10. 26.
육영수 생가를 찾아서 옥천에 간 김에 들린 곳이 정지용 문학관과 육영수 여사 생가이다. 서로 지척에 있어 함께 구경하면 좋다. 서로 다른 인물이기에 분리하여 소개해 본다. 정치적인 색깔은 빼고 있는 그대로 한 번 살펴보자... 아버지 육종관(陸鍾寬)과 어머니 이경령(李慶齡) 사이의 1남 3녀 가운데 둘째 딸로 태어났다. 1942년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옥천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다가 1950년 10월 12일 당시 박정희 중령과 결혼했다. 1963년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대통령 부인으로서 각종 사회활동, 육영사업, 적십자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새로 기념사업으로 신축된 것도 있겠지만, 생가는 전체적으로 매우 터가 넓은 데다가 많은 기와건물이 있어서 대단한 집안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치.. 2022. 11. 11.
정지용 문학관을 찾아서 대전을 가는 도중 금강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도로에 차를 올리니, 차에 문제가 생겼다. 옥천에 있는 정비소에 차를 맡기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대전에 가게 되었다. 일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차를 찾고는 간 김에 옥천 이곳 저곳 둘러보는 데 그곳에 '정지용 문학관'이 있었다. 정지용은 1902년 맏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송재숙과 결혼했으며, 1914년 한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믿게 되었다. 당시 그는 여러가지 교육을 받았는 데, 시대를 거슬러 생각해 보면 그 당시로도 경제적으로는 괜찮았던 것 같다. 그는 1930년대에 크게 활동하면서 한국 현대시를 새롭게 개척한 선구자로 불리어진다. 호수 - 정지용 얼굴 하나야 / 손바닥 둘로/ 푹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 눈 감.. 2022. 11. 8.
배론성지를 걷다 배론성지는 우리 나라 에서 두번째로 사제가 된 최양업 토마스(1821-1861) 신부의 묘가 있는 곳이다. 제천, 원주간의 국도변에 위치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로, 배론이란 지명은 이 마을이 재한 산골짝 지형이 배 밑바닥 모양이기 때문에 유래하였다. 한자 새김으로 주론(舟論) 또는 배론(徘論)이라고도 한다. 배론에 천주교신자들이 본격적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1791년에(정조15) 일어난 신해박해 이후로 추정되는데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숨어든 교우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이곳은 구학산과 백운산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산악지대로 10리만 가면 박달재 마루턱에 오르고, 충주, 청주를 거쳐 전라도와 통하고, 제천에서 죽령을 넘으면 경상도와 통하며 원주를 거쳐서 강원도와도 통하는 교통의 길목이기.. 2022.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