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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에서 가 볼만 한 곳

안동 도산서원을 찾아서

by marrige 2021. 12. 15.

도산서원은 언제가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가다듬어지는 힐링 장소이다. 입구에서 도산서원까지 가는 길은 최고의 산책코스라고 할 수 있다. 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비경은 걷는 내내 마음을 상쾌하게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은 1501년 연산군 7년 현재의 안동 도산면에서 출생하여 1570년 선조 3년에 돌아가셨다.

입구에는 이러한 표지석도 있는 데, 말이 멈춰서 말 정거장이었나 보다. 이곳에서 말이 멈추고 사람은 내리고, 그리고 도산서원을 향해 걸어갔겠지...

이제부터 걷는 길이 도산서원으로 가는 멋진 산책로이다. 잘 정비되어 있어서 왠지 모르게 마음도 어깨도 살짝 펴지면서

내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길이다. 걷는 길에 따라서도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가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철이나 멋진 풍경을 자아낼 것 같다. 

공자의 후손이 와서 쓴 글을 비석에 담아 놓았다. 

산책로는 내내 마음을 상쾌하게 하는 낙동강 안동댐의 넓게 펼쳐진 푸른 물이 보인다. 내륙의 강물은 바다의 강물과 다른 특별한 감상을 사람들에게 남긴다. 시 한 수라도 읊고 싶은 데, 시상이 떠오르지 않으니, 시인이란 따로 있단 말인가.

저 멀리 강 한가운데 시사단이 보인다. 안동댐이 만들어 지면서 육지였던 땅이 이렇게 거대한 바다처럼 변해 버렸다.

문화 해설사의 한복입은 모습이 이채롭다. 한복을 입은 이는 왠지 모르게 멋스러움과 품위, 권위가 느껴지니 나만의 생각일까?

관광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문화해설사. 겨울 찬 바람에 몸 건강 잘 챙기시기를...

시사단은 조선 정조 16년(1792년) 정조 임금이 평소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 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 장소이다. 총 응시자가 7,228명이었고, 임금이 직접 11명을 선발하였다. 

안동댐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서원으로 들어가지 전 넓은 공터에는 그 옛날 수몰이전의 나무들이 세월의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문화해설사가 시사단에 대해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산과 강물, 코로나 마스크를 한 관광객들과 바람이 잠깐 지나간 듯 펄럭이는 해설사의 한복자락이 그림자와 함께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시사단 표지석이 시사단을 바라보고 있다. 안동댐은 정말 넓다. 

수몰이후의 나무 모습이니, 흙으로 잠그지기 전의 나무의 크기는 가름할 수가 없다. 

나무의 위세가 정말 웅장하다. 파묻힌 줄기는 뿌리가 되어 이곳을 지키고 있을 터인즉...

그 큰 나무들을 지나 도산서당에 들어서기 전에 열정이란 우물이 보인다. 이곳의 물을 길어 밥을 하고, 마시고...

오른쪽 건물이 도산서당,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농운정사, 저 관광객이 들여다 보는 곳 안쪽 건물이 도산서원이다. 

퇴계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쳐하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곳. 도산서당이다.  앞에 매화나무가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도산서당 앞 정원의 우물. 그 건너편에는 4군자라 불리우는 매,란, 국, 죽 이 나란히 심어져 있다. 

도산서당의 현판은 선생께서 직접 쓰신 것이다. 글씨가 아기자기하면서 이채롭다.  한자의 서자 안에는 새 한마리가 날고 있는 듯한 글씨체이다. 

도산서당 앞 정원에 정우당이란 우물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도산서당의 거처하시던 방은 '완락재'라 하고 마루는 '암서헌'이라 하였다. 잠시 앉아 사진을 촬영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함께 한 사람이 없어서 아쉬웠음.

완란재의 모습을 살펴보기 위해서 눈을 안쪽으로 돌려본다. 

방의 오른쪽은 서가가 있는 곳, 왼쪽은 매우 비좁은 데, 퇴계선생이 휴식을 하시거나 주무시던 곳.

족자가 걸려있는 곳이 고서가 있었던 곳인데, 이곳에서 퇴계선생이 옛선현과 책으로 만났던 곳인 모양이다. 선현들 앞에서 주무시기가 뭐해서 왼쪽에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 놓고 이곳에서 주무셨다니...

매화를 그렇게 좋아하셔, 돌아가실 때에도 '저 매화에 물 좀 주라.'고 하시고 돌아가셨다니...

도산서당 안으로 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했던 곳인 모양이다. 

도산 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4년뒤 선조 7년 1574년에 문인과 유림이 세웠다. 

도산서당 왼쪽 옆에 있는 농운정사는 제자들이 공부하던 기숙사이다. 선생께서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공 자 모양으로 짓도록 하였다 한다. 

동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재'라 하고, 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이라 하였다. 

제자들이 휴식을 취하던 서편 마루 '관란헌'의 현판이 보인다. 

퇴계선생 생존시 건물은 이렇게 도산서당과 농운정사 두 개라고 알려져 있다. 

광명실, 퇴계서당 뒷 쪽으로 보이는 두 채의 건물이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 동. 서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고, 습해를 막기 위해 누각식으로 지었다.  

퇴계선생 사후 문인과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도산서원. 이 현판의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모여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문화재 해설사가 도산서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동재. 서재는 서원건물을 앞에 마주하고 있는 데, 동편 건물은 박약재, 서편 건물은 홍익재라 한다.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도산서원의 전교당 글짜가 뚜렷이 보인다. 앞에는 계단이 두 개 있는 데, 가운데로 올라가는 사람과 왼쪽으로 올라가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다는 데, 아무래도 가운데는 유생들, 왼쪽 계단은 일반인이 아니겠는가.

도산서원 왼쪽 서재 건물 안쪽으로 상고직사가 있다.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 하 두 고직사가 있다. 

고직사의 내부를 살펴본다. 

유물 전시관으로 내려와 보았다.  퇴계선생의 과거급제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히 나와 있다.

유물 전시관에는 많은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부를 보면, 성리학과 퇴계선생의 철학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퇴계선생의 대표적인 사상은 이기이원론적 주리론인데 이로써 기를 다스려 인간의 선한 마음을 간직하여 바르게

살아가고, 모든 사물을 순리로 운영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퇴계선생의 혼천의, 혼천의 넘어로 내 사진을 촬영하는 내 얼굴도 비치고 있다. 

강세황이 그린 도산서원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모양이다. 

다시 돌아오던 길을 걸어 입구까지 왔다. 가던 길과 오던 길은 이상하게 다르게 보인다.

내년 봄에는, 아니 여름이나 가을에는...

                               힐링코스 - 도산서원과 안동댐 주변을 한 번 검색하여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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