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새해 아침에 신문에 발표되는 신춘문예 당선작품들은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나 마음에 봄이 온 듯한 청량감을
심어준다. 신춘문예 당선소설들은 당대의 세상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신춘문예 당선소설 심사평들은 하나 하나 읽어본다.
세상의 관심사가 지금 무엇으로 향하고 있는지,
일상의 주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지금 지향해야 하고
걱정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글은 어떻게 쓰야 하는지..
그래서, 나는 이를 공유해 보기 위해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중 눈길이 가는 평을 발췌하여 본다.
문화일보 /이상하 /친칠라취급주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면-외적 인격에서 한층 진화한 가면 벗기기에 도달한 수작.
어떠한 가면인가 하면, 감추기가 아닌 드러내기 위한 가면,노출증적 가면이다.
치밀하게 조작된 이미지와 위험하고 불온한 장악력이 개연성을
확보하며, 압축적이고도 짜임새 있는 한 편의 빼어난 단편소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요청받고 있는 주제를 고백체의 문장으로 차분히 담아냈다.
부산일보/조재윤/기린을 옮기는 방법
확실한게 아무 것도 없는 우리의 현실을 상징하는 구성을 통해 삶을 은유하는 서사방식.
그 속에 환상성을 간직한 것이 이 소설의 특별함. 다소 낯설지만 새로운 형식.
불교신문/정유진/목련의 잉태
문장이 안정감이 있고,틀린 문장, 어색한 표현이 없고 비유가 적절하다.
문장에 속도감이 있고,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예술적인 감수성도,
전체적인 짜임새도 믿을 만하다.소재선택도 잘했고, 주제도 튼실하다.

서울신문/홍성구/폴리사운드
남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 소음을 듣는 어느 사운드 디자이너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많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드문 시대에 듣는 일의 정치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머뭇거리면서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들추어내고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라 한 발짝 뒤에서 이를 섬세하게 감지하고 이해하려는 방식에
이 작가가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미더운 문학적 태도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일보/이수정/숨이 차오를 때
마라톤과 수영을 통해 숨의 역동성을 문학적으로 탐구하는,
정교하고 잘 짜인 작품. 유머가 깃든 섬세한 문체와 맛깔난 대사.
영남일보/전혜린/사실 나도 케이크가 아닐까
초경쟁사회에서 젊은 세대가 맞닥뜨린 취업진로 문제를 실험적으로 형상화한 문제작.
용도폐기의 공포 앞에서 케이크 캐릭터가 겪는 자격 시험과
고용 현실은 냉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신을 버리려는 이 세상을 어찌할 수 없어서
끝내 자신을 파멸시키는 엔딩은 그로테스크성과 비극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전북도민일보/유인봉/삼대
이 작품은 첫 페이지 서두의 문장과 문단에서 독자가
그 다음의 결말에 대한 서사를 끝까지 읽고 싶어 하는 욕구를
충족하였다.작가는 사건의 전말을 처음부터 순서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결정적 사건을 먼저 암시해놓고 진행해가는 소설작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식을 취했다.
전체 스토리에서 핵심적인 극적인 중간지점의 서사를 암시하는
내용을 먼저 어필시킨 후 독자의 궁금증을 배가시켜 놓고
서사를 이끌어 3단계로 결말을 지었다.
전북일보/장용돈/넋두리
현재의 농촌을 배경으로 소를 키우고 소를 잃는 농부의 이야기.
시대적 반영이 이루어진 주제의식,서사적 긴장감,
안정적인 문장,지역어의 복원을 통한 유려한 문장
조선일보/차영은/경고문 쓰는 여자
금지할 때 자유로우며 경고문이 삶의 반창고인 한 의욕적인 사서의 이야기.
경고문을 집요하게 붙들고 질문하는 힘과 경고문에 대한 다양한 변주들이 살아있으며
살아 있는 듯한 보조 인문들의 필요 이유까지,
이 소설은 군더더기가 거의 없다.
소설 전체가 하나의 경고문으로 읽히기를 원하는 듯한 작가의 바람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한국일보/길란/복 있는 자들
임대주택에서 최대한 오래 살기 위해 지속가능한 가난을 추구하는
주인공의 완벽한 인생 설계를 통해 가난의
역설을 가시화하는 작품. 불확실한 성공 신화에 매달리기보다는
확실한 구제 정책을 이용해서 최소한의 품위를 챙기는
영악한 삶의 방식이 그가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까지 가려 주진 못한다...
지극히 사실적일 뿐이기도 한 이 소설은
가난이라는 고전적 주레를 동시대 한국의 정서로 정확하게 번역해 보인다.
딜레마로 가득한 주인공을 바라보는
마음이 고단할 만큼 바빴다.
한라일보/김영진/소금의 집
고독사와 특수청소라는 소재를 택해 단편소설의 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작품은 소금이 지닌 정화와 재생의
깊은 상징성을 탁월하게 서사에 녹여내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구체적 현실의 차원에서 섬세하게 포착한다.
제주의 지역적 특수성을 자연스럽게 활용한 점도 돋보인다.
동아일보/박진호/어떤 진심
단단하고 강렬하다.적절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은 감각적이고
서사에는 시의성과 힘이 있다. 대학 입시를 위한
점수 따기의 전쟁터가 된 '세상 속 세상' 학교와
우리 사회를 냉소적으고 위악적인 어조로 잘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작품 후반의 예상을 뒤엎는 반전을 통해
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매서운 타격이 느껴진다.

농민신문/오재아/블러드문
중등학교에서 과학부장을 맡고 있는 50대 여성 교사가 보고 겪고 생각하는 우리 교육
현장의 이야기. 순수함과 열정 속에 일을 벌이기만 하는 젊은 남교사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자신의 삶과 젊은 교사의 삶, 아이들의 교육 현실을 함께 살핀 수작 중의 수작.
국제신문/이주현/노란 문
젊은 여성과 노년 여성의 우연한 만남,짧지만 유익하고 아름다웠던 소통,
헤어진 뒤의 안타까운 상황을 차분히 그렸다. 서정성 넘피는 고백체 문장으로 다큐처럼
찍어냈다. 인간극장 휴먼드라마를 보면서 동시에 공무원연금 수급의 어두운 이면 보고서를 보는
듯 했다. 우울하고 아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파하면서도 인물들을 참 다정하게 구체화했다.
광주일보/김근수/그리고 바다,
두 갈래 서사 운용과 각 갈래의 화법이 균형적으로 작동된 점이 돋보였다.작가의 특권은
소재를 선택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가에 있다. 서사를 이끄는 두 겹의 층위가
구체적이면서 객관적으로 운용되고 있어 새로운 시도로 보였다.

경향신문/남의현/관희는 거울 거울은 관희
가난하고 아픈 연인이 '개처럼'되어 혹은 '개같은 '사람들과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는 내용.
앙상한 기틀을 가지고 문학적 풍성함을 더하는 감각이 돋보이는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인간적 사랑스러움과 혐오스러움을 세련되게 표현하면서도 빈곤의 현실을 묵직하게
관철하는 문학적 이중 발화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강원일보/김화순/네모난 우주가 만든 둥근 세상
도입부부터 독자를 사로잡는 힘을 지녔다. 재기 발랄한 상상력,톡톡 튀는 대사,모계사회를 꿈꾸는 듯한 세계관 등등이 다소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만들었다.
* 별로 재미없는 주제인 것 같아서 추억의 영화 포스터 몇 장을 붙여 놓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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