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西小門) 은 아현과 남대문 밖의 칠패(七牌) 시장으로 통하던 문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붐비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의 사형집행은 많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행해졌으며, 서소문 밖도 이러한 이유로 1416년(태종 16)에 한양의 주요한 형장(刑場)으로 정해졌다.
서소문역사공원은 원래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지'로 구한말 서소문 전투의 군인 등 사회개혁 세력들 뿐만 아니라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된 곳이다. 처형된 천주교인 중 44명이 성인이 되어 국내 최대의 천주교 성지로 불리어진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 요한복음 11. 25-26
현양탑은 좌우 대칭탑 등 3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 탑 기단 위는 유리로 막아 물이 흐르도록 함으로써, 박해와 죽음의 상징인 칼과 생명의 상징인 물을 대비시켰다고 한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지하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하 2층에서는 상설 전시장과 만날 수 있다.
중림동에는 약현성당이 있고, 그 중심이 되는 도로변에는 김정호가 약현에 살았다는 표지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