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 서울 장충단 공원 유세때였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장충단 공원 유세가 있었는 데, 그 넓은 공원 전체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60년, 70년대 한국정치사를 논할 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을 빼놓고 논할 수는 없다. 이 세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한국현대사를 움직였다. 한 사람이 개발독재로 가난한 한국사회를 현재의 부유한 국가로 만드는 기초를 닦았다면, 두 사람은 군부독재정치를 종식하고 민주화 시대를 열기 위해 어떤 탄압에도 저항을 한 거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은 수상 당시 진영에 따라 해석이 약간 달리했던 것 같다. 그러나,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만큼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지금은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기간에 걸친 민주화투쟁, 남북화해무드를 이끌어 내려고 한 업적에 대해 당연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벨상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시선을 끄는 부분이 문학상과 평화상이다. 노벨의 정신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대중적인 시선을 끌 수 밖에 없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벨상 수상은 그대로 한 나라를 전 세계의 다른 나라에 알릴 수 있는 매우 특별한 기회가 된다. 그대로 국격이 되기도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5·16군사정변(1961) 이후 약 30년간 역대 군사정권하에서 납치·테러·사형선고·투옥(6년)·망명(10년)·가택연금 등의 온갖 고초를 겪었으나 군사정권에 끝까지 저항하여 대중적인 카리스마를 얻었으며 세계적으로는 한국의 인권투사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노벨상 수상대이다. 이 수상대에서 수상소감을 전 세계에 전한다.
노벨상 수상 당시 입고 가셨던 예복이라고 한다.
수상소감을 말하는 영상이 계속 흘러 나온다. 인동초는 김대중 대통령을 상징하는 꽃이다. 찬 겨울에도 피어나는 꽃.
김대중 대통령이 보라매 공원에서 대중연설을 할 때와 가훈. 외부연설을 할 때는 100만명 정도가 한 곳에 집결하였으니
정말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당시 민주진영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로 받들여졌다. 그가 연설할 때는 항상 대중을 압도하고 열광시키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양대정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영호남으로 갈라진 표심은 호남에서는 대통령 한 사람 나오기가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렵다. 이를 이용하여 선거 때마다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발언들을 하여 표를 가져가는 데,
목포 출신의 김대중 대통령이 그 당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표의 분산 때문이었다. 21세기에는 우리 국민도 좀 달라져야 하겠다.
김대중 대통령은 메모광이었다.
기념관에는 대통령 집무실을 그대로 모방한 이와같은 장소가 있다. 한 번 앉아서 기념촬영을 해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83년 자신이 행동할 수 없는 그 어려운 감시받고, 탄압받는 시기에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필리핀등 독재정치로 신음하는 국가들에 정치적인 메시지를 보내 민주화 운동세력을 응원하였다.
내가 중학교 시절 김대중 납치사건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동아일보를 비릇한 모든 신문의 1면을 1,2면 전체를 장식하였던 것 같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는 내란음모사건이란 이름으로 사형선고까지 받고, 세계 각국 지도자의 구명운동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다행히 그는 사형을 피하게 되었고, 이후 석방되어 미국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실물 조각과 함께 내가 서보니 두 분 다 나보다 키가 작으셨다.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세 분 다 170을 넘지 않은 것으로 안다. 중국의 등소평은 150이라고 하였던가. 어떻게 저 왜소한 체구로 세계 전체를 거시적으로 보고, 몇 백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게 되었을까.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 이희호 여사를 빼고 김대중을 이야기할 수 없다.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키운 정신적 지주가 이희호 여사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동교동 저택에 문패에는 두 분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감옥에 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은 엽서에다 깨알같은 글씨로 자신의 모든 감옥에서의 사색을 이희호 여사에게 적어 보냈다. 옥중서신은 그 하나 하나가 김대중의 위대한 철학이다.
아무리 위대한 거인이라 하더라도 먹고, 입고, 잠자는 일은 소박할 수 밖에 없다.
이희호 여사는 결코 김대중 보다 자신이 더 특별한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희호 여사 자신이 사실은 현대사에 끼친 영향은 김대중 대통령 못지 않다 할 것이다. / 목포 삼학도 지역에 있는 김대중 박물관 외관은 촬영을 하지 않아 여기 올려 놓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주위를 검색해 보자!!
'남도에서 가 볼만 한 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금박물관을 다녀와서 (0) | 2022.03.11 |
---|---|
고하도 산책 (0) | 2022.01.17 |
목포는 항구다 (0) | 2022.01.11 |
천은사- 지리산 3대 사찰 (0) | 2022.01.05 |
진도-여귀산 돌탑길 (0) | 2022.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