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은 서원 8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언적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1572년(선조 5) 세워졌다. 1574년 사액 서원이 되었고, 1871년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존속된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9개의 서원은 소수서원(1543년 건립),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이다. 16세기 중엽부터 17세기 초까지 전부 세워졌다.
옥산서원 왼쪽으로 옥산천이 흐르고 있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설 교육기관이며, 향촌 자치운영기구로,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을 보여준다.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이다.
옥산서원 현판이 있는 가운 데 건물이 화합·토론 등 서원 내의 여러 행사 때 사용하는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이다.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학문을 닦는 곳인 민구재(敏求齋)·은수재(誾修齋)-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은수재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민구재(敏求齋)이다. 대부분의 서원이 이와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언적의 신도비를 모신 신도비각(神道碑閣)이다.
이언적의 문집 및 판본을 보관하던 장소로 경각(經閣)·판각(板閣) 등이 있다.
정면으로 본 민구재이다.
유생들의 휴식공간인 무변루. 중심건물인 구인당(求仁堂)과 마주하고 있다. 서원의 전체 구조는 ㅁ 자이다. 뒤에 보이는 산이 자옥산이다.
강당 내부에 걸려있는 서원 규율. 이곳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 적혀 있다.
서원의 중심이 되는 구인당 내부에서 무변루를 바라보다. 휴식공간인 무변루는 '끝이 없는 누각'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옥산서원 현판과 무변루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이다.
세심대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회재선생이 명명하고 퇴계 선생이 돌 표면에 큰 글씨를 적었다고 한다.
세심대라는 이름 그대로 물이 맑기 그지 없다.
단단한 나무다리가 이채롭다.
옥산서원 옆의 옥산천 주위는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있어 일상에 지친 심신을 잠시나마 휴식시키기에 좋다.
옥산서원에서 물길을 따라 독락당까지 가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옥산서원에서 세심대 나무다리를 건너 조금 걸으면 독락당 입구가 나온다.
독락당(獨樂堂)은 여주 이씨 택이며, 파조는 이전인(李全仁)이다, 조선 중종 27년(1532년) 건립되었다. 마침 방문한 날은 현재도 살림집이라 내부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간혹 내부를 볼 수 있을 때도 있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앞 냇물을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독락당 도로 건너편에 경주 귀후재가 나온다. 여강 이씨 문중 자제들을 주로 교육하였다.
독락당에서 약 100m 정도를 가면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이 나온다. 국보 제40호. 정혜사지 십삼층석탑은 신라 석탑으로는
유일하게 13층탑이다.
왼쪽으로 자옥산과 오른쪽으로 도덕산이 보인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다.
13층 석탑에서 조금만 더 가면 옥산지(댐) 바로 아래 장산서원이 나온다.
1780년(정조 4) 지방 유림의 공의로 이전인(李全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던 중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후손들에 의해 2006년 복원되었다.
복원된지 얼마 안되어 내부가 깨끗하다.
옥산서원을 검색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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