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온 김에 가톨릭(천주교) 신자들이 기도하는 곳, 천주교 성지 대구 주교좌 계산성당을 둘러본다.
계산성당은 우리나라에서 서울과 평양 다음으로 세 번째 세워진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고 서울 명동성당 건립에 참여한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에 완공하였다. 1911년에 주교좌 대성당이 되었다. 두 개의 높은 철탑이 매우 인상적이다.
빨간 벽돌의 옆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데, 이러한 건물을 본 적이 없었던 그 당시 사람들은 얼마나 신기하게 이 건물을 바라보았겠는가.
주변 정원은 넓지 않으나 그런대로 건물과 함께 시끄러운 도심 속에 평화로움을 만날 수 있다.
계산성당 설립 100주년을 맞은 지난 1986년 성당 한 켠에 자그마한 정원을 조성하면서 초대 주임 로베르(김보록) 신부의 흉상을 세웠다. 그는 1853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나, 1876년 사제서품을 받고 그 이듬해 한국에 와서 황해도, 함경도, 경기도, 충청도 등에서 활동하다가 계산성당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였다. 1922년 69세로 선종하였다.
처음의 계산성당은 한옥으로 만든 십자형 성당이었다. 1989년 왼편의 성당보다 해성재 건물이 먼저 완공되었다.
해성재는 대구읍내에 등장한 최초의 서양식 교육기관이었다. 가톨릭 집안 학생들만 교육하다가, 이후 신자 아닌 학생들도 받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천주교 200주년과 순교자 103위 시성식에 참석하셨다가 5월 5일 계산성당도 방문했다.
계산성당 '옛 사제관' 모형물이다. 당시의 건물은 해체되고, 지금은 그 당시의 모형을 딴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기도하는 마음에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같다. 저 촛불 하나에는 누구의 어떤 간절함이 담겨 있을까?
성당내부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이렇게 대구 계산동성당에 대한 역사가 기록된 조형물이 있다. 이 계산 성당은 1950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장소이기도 하다.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신자는 손으로 이 성수(성스러운 물)를 찍어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 후에 입장한다.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서 뒤돌아보면 이와 같은 예수님의 십자고상을 볼 수 있다.
내부의 정면, 십자가 위에 성모마리아 상이 지켜보고 있고, 양옆으로 성인들의 상이 보인다.
제대 아래 꽃꽂이가 온갖 정성으로 가득하다. 수녀님 한 분과 신자 한 분이 미사 준비를 하고 있다.
기도하는 신자들. 발걸음조차도 조심스러운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고딕양식의 건물과 어울려 특별한 분위기를 낸다.
건물 내부의 벽면에는 이와 같은 상이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데, 신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14번의 특별한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14처로 만들어 기도드린다.
길건너 저 멀리 비슷한 첨탑 두 개의 개신교 대구제일교회가 성당의 첨탑과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사실 이 계산성당 주위은 근대화 골목 투어 지역이기 때문에 계산성당 외에도 볼거리가 많은 지역이다. 대구 근대화 골목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계산성당도 꼭 보고, 내부에도 들어가 보길 추천한다.
계산성당 주위를 탐색해 보자~~
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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