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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가 볼만 한 곳

분황사, 황룡사지터

by marrige 2022. 2. 20.

분황사

분황사 입구에는 일단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원효성지' 분황사는 불교조계종으로 불국사의 말사이다. 황룡사지와 맞닿아 있고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으로 유명하다.

주차장에서 담장 넘어로 본 분황사 내부. 오른쪽으로 종각이 있고 관람객 두 사람이 살펴보고 있다. 

분황사 입구.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관람객이 많지는 않다. 입장료가 성인 2000원인데, 사찰의 크기로 보아 안받았으면 하는 느낌도 준다. 다만 국보가 있는 곳이니 이를 관리하고 보호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이해하여야겠다.

분황사에 들어가기 전에 이와 같은 분황사 소개문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3년에 창건되어 지금빠기 법통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창건 직후에는 자장율사와 원효대사가 주석하였다니 유서깊은 절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어둠과 번뇌를 없애버리고 가족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는 불자들의 오색의 등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현재 남아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 모전석탑.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렸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3층만 남아 있다. 

여기가 정면인가 보다. 향을 피우고 여기에서 불자들은 몸과 마음을 바쳐 안녕을 비는 기도를 한다. 

탑은 넓직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모습이다. 선덕여왕3년(634) 분황사의 창건과 시기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면이 이와 같은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돌문을 열고 내부를 바라보고 싶었으나 문화재 보호를 위해 접근금지다. 힘차고 부드러운 금강역사의 모습은 7세기경 신라 조각 양식을 잘 보여준다. 

뒷 편에서 바라보았다. 1915년 일본인에 의해 수리된 이후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수리 당시에는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분황사 우물이다. 

분황사 화쟁국사비부은 원효대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의 받침돌이다. 어느 시기에 비석은 파괴되고 그 조각이 일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분황사의 중심은 이 모전석탑인 것처럼 느껴진다. 규모가 크지 않은 데다가 이 탑이 사찰정원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스님들이 거처하시면서 공부하시는 곳. 일반인의 접근을 금지하고 있다. 

몇 개의 사진만으로도 절이 작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분황사 주 건물인 보광전이다. 

보광전 내부로 들어가보니 건물도 작지만, 내부도 비좁다.  금동약사여래 입상이다. 신라경덕왕 때 제작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09년에 다시 제작된 조선후기의 유일한 금동불입상이자 현존하는 가장 큰 금속불상이다.

종각에서는 천원을 넣고 1타를 해 볼 수 있다. 내가 친 종소리가 절 밖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에 평화를 주길 기원해본다.

분황사의 당간지주. 당간은 설법이나 법회 중임을 표시하기 위해 사찰 앞에 세우는 깃대를 말하고, 당간지주(幢竿支柱)는 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두 개의 돌이나 쇠로 된 버팀대이다. 보통 사찰 입구에 세운다.

기둥사이에 놓인 당간의 받침돌은 거북모양이다.  양 기둥에는 별다른 조각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아래 중간 윗부분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이 보인다. 

당간지주를 보면서 생각한다. 분황사에서는 어떤 의식이나 행사가 있었을까?

분황사 맞은 편, 오른쪽이 바로 황룡사지 터이다. 

경주 황룡사지 터에는 그 당시의 흔적만 현재 남아 허허벌판이다. 그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룡사가 얼마나 큰 사찰이었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저 멀리 황룡사 역사 문화관이 보인다.

벌판에 세워진 표지판에는 황룡사가 신라 최대의 사찰이라는 것을 소개한다. 월성 동북쪽에 궁궐을 조성하다가 황룡이 나타나자 사찰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선덕여왕 14년에 구층목탑을 건립하면서 완성되었는 데, 93년에 걸쳐 대규모 국가사업으로 완성된 사찰이다. 

지금은 허허벌판이 된 곳이 산책로가 되어 일반인도 길을 따라 길을 따라 걸어 볼 수 있다. 넓게 펼쳐진 벌판이 가람이 얼마나 거대하였겠는가 상상해 보게 한다. 복원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선덕여왕 12년(643) 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9층 목탑을 짓게 되는 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 완공되었다. 그런 황룡사가 고려 고종 25년 (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고 지금은 그 흔적만 이렇게 남아 있다. 

 

옛 신라인의 숨결이 남아있는 이 터를 한 번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픈 역사는 뒤로 하고 영화로왔던 신라시대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걷다보면 나와 하늘과 땅과 구름과 저 멀리 산야가 하나 되어 속세의 모든 어두움을 단박에 날려 버린다. 

                                                      분황사 찾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