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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고 싶을 때

피아니스트 김석란의 사진작품 감상

by marrige 2022. 1. 29.

경주 대릉원 인근에 있는 황리단길. 전국적으로 유명한 젊은이의 거리에 란 갤러리가 있다. 쭉 뻗은 향리단길 첫 갈림길 왼쪽으로 그리고 몇 발자욱 걸어 바로 오른쪽에 김정란 화가의 개인 갤러리 외부의 모습이다.

'갤러리 란'에 들어서면 정원이 있는 한옥이다. 이곳에 주요 작가들의 미술작품이 수시로 전시된다. 작품 감상은 무료이다. 김정란 화가가 사택을 이렇게 갤러리로 만들어 경주를 현대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오늘은 이전의 미술작품과는 달리 흑백사진전이다. 작가의 프로필을 살펴본다. 이런 ! 널리 알려진 유명 피아니스트 김석란이다. 그녀는 2000년, 2002년 예술의 전당에서 '김석란 피아노 리사이틀'을 개최한 적이 있고, 국내와 국외에서 솔로이스트로 그리고 오케스트라들과 협연을 하면서 왕성한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는 피아니스트이다. 동시에 예술분야 베스트셀러 '김교수와 예술수업','두근두군,드뷔시를 만나다'를 출간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마침  전시현장에는 김석란 작가가  있었다. 그녀가 카메라에 대해 소개하는 데 대표적인 정방형 중형카메라 롤라이플렉스라고 한다. 이 사진기로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비운의 천재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가 사용한 것과 동일기종이다. 

한 쪽 전시장안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이동하려는 데, 관장님이 보이신다. 저절로 친밀감을 불러 일으킨다.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눈길과 눈길로 주고 받는 친밀감은 편안함으로 바뀐다.

내게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무늬가 있는 부드러운 천이 깔린 테이블 위에 오른쪽에는 화병과  왼쪽에 편안하게 오수를 즐기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양이의 하얀 털 쪽으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강렬한 빛이 작품의 미를 고조시킨다.

테이블 위의 고양이 사진에서 고양이를 없애버리고 오른쪽으로만 촬영한 장면이라고 하는 데, 전혀 다른 이미지를 창출한다. 무늬있는 테이블과 그 윗부분을 가르는 창틀. 그리고 왼쪽의 화병과 오른쪽의 커피잔이 잔잔한 여운을 주는 데...

전시된  거의 대부분의 흑백사진들은  명상을 하면서 왠지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리를 이미지로 바꾼 듯한 사진들은 그 특별한 분위기로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새로운 미적 아름다움에 동요하게 만든다.

음악을 전공하고 음반을 내고 하시는 분이 어떻게 사진을 이렇게 잘 촬영할 수 있느냐고 작가에게 물었더니 작가가 대답한다. 음악을 위해서요. 음이라고 하는 것이 이미지를 창출하거든요. 그 이미지를 사진에 담고 싶었어요...귀로 듣는 음악을 이미지로 잡고 싶었단다. 전시된 작품을 감상하면서 내가 느낀 것을 그대로 복사한 듯이 작가의 말로 들으니, 나도 뭔가 볼 줄 아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흑백사진이 컬러사진과는 다른 심상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흑백사진이 연필촉을 길게 깍아 눕혀 스케치북에 칠을 할 때와 같은 질감이 드러나는 사진을 본 적은 없다. 사진은 고요한 강이 늘 출렁거리며 온전한 평면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정지된 화면 속에 질감으로 그대로 드러나게 표현되어 있다. 

아쉬운 것은 사진을 사진찍어 여기에 올려 본 들 직접 작품을 볼 때의 그 질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평면의 사진에

울퉁불퉁한 질감이 보는 이로 하여금 느껴지게 한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그런 의문에 김석란 작가는 유감없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해준다. 

작가를 생각한다. 도대체 재능이란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하나의 재능도 주어지지 않은 것 같은 데, 어떤 이는 너무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니 한가지 재능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분야에 관계없이 인간의 제한된 시간에 이것 거것 어느 것에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일까?

그녀의 사진은 동적인 것을 정적으로 바꾸어 놓고, 사람으로 하여금 고요 속에 머물게 한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정적인 것도 아니다. 정적인 것 속에 움직임이 보인다. 그것은 자고 있는 중에도 심장은 박동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강에 떨어지는 빗방울 자욱들이 마치 부드러운 진흙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 자욱인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에게 어떻게 음악을 하시면서 이런 멋진 사진작품도 만들 수 있는지 물었더니 그녀가 하는 말이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서 예전에 몇 번 들었던 말을 한다. 할 줄 아는 게 이거 밖에 없어서요. 내가 말했다. 세상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사람들이 많다고...도대체 그들의 끝은 어디냐고...그렇게 말하고 나니 나는 내 부족함을 내뱉은 듯 하여 시원하긴 한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미친 사람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고 한없이 부러워하고 있으니... 자신이 사랑하는 무엇인가에 미쳐 열정을 다하는 사람에게는 자석처럼 끌림이 있다.

사진을 사진으로 찍으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원본 사진은 이와 전혀 다르다. 갈대를 찍은 사진인 데,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장면인 데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사진이 주는 회화와 같은 묘한 느낌 때문이다. 빛이 있는 부분과 그림자가 있는 있는 부분, 그리고 약간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 무슨 숨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숲속 저 쪽 긴 벤치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는 하나의 스토리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사진 속에 숲이 있고, 길이 있고,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인공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자연 상태 그대로를 사진 속에 넣을 때도 스토리가 담겨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이 구도를 참 잘 잡았다 감탄하게 만든다.

밖이 내다보이는 유리문과 탁자와 의자만 놓여 있는 흑백사진이다.  이런 사진을 보고 이런 상상 한 번 하게 되지 않을까? 저 자리에 앉아 보고 싶다. 그리고, 간혹 창밖도 내다보면서 맞은 편에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오른쪽에 앉을까, 왼쪽에 앉을까? 아니 혼자 앉아 있은 들 어떠리. 그저 저 자리에 앉아 손걸이에 몸을 의지하며 앉아 있고 싶다...

햇빛이 내리비치는 은빛 강에  굽이치는 물결이  동적이면서 정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적어도 감상자인 나에겐 그렇다. 이런 것을 신비롭다고 하는 것일까? 아니 피아노의 반주를 옮겨 놓은 것 같다. 그런 것인가?

벽의 모서리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화병을 하나 올려 놓으면 어떨까? 카메라 렌즈는 움직이는 사건의 순간을 포착하여 정지된 화면에 담기도 하지만, 정지된 순간을 담아 그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기도 한다.

아니, 화병 치우고 도자기를 하나 올려 놓으면 어떨까? 같은 공간에 다른 사물을 올려 놓으면 느낌도 달라진다. 

화병은 그대로 놓고 이번엔 테이블을 네모 탁자에서 원형으로 바꾸어 본다.  전혀 다른 분위기. 작가가 이 세 작품을 나란히 전시해 놓은 의도는 무엇일까? 하나의 사물을 보는 것도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본다. 하나의 공간에 다른 사물을 배치하는 것도 느낌을 다르게 한다. 사물의 작은 이동에도 우리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시간과 공간과 사물의 배치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해 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아래의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과 이 사진은 디지털 사진기로 촬영하였다고 하는 데, 살펴보니 위에 올린 사진들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위의 사진들이 질감이 느껴진다면 디지털 사진기로 찍은 사진은 부드럽고 질감이 느껴지질 않는다.

일본 후가이다 비에이 후라노에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 하얀 눈위에 나무 한 그루가 하얀 눈에 덮여 있다. 누구나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나 찍을 수 없는 사진. 시간과 돈도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어느 한 순간을 사진 속에 담고자 하는 열정- 대상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포착해 보고 싶다는 그런 열정만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블로그에 사진 작품을 좀 올려 놓겠다고 하니 김석란 작가가  기꺼이 허락한다. 그녀의 흑백 사진전을 보고 나니 '작품사진'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사진작품의 정수를 보고 난 나는 작품을 보는 눈높이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것일까? 작가에게 ' 더 많은 작품 기대합니다.' 하고 인사를 주고받고 갤러리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정원을 내리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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