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출신. 1895년 8월 을미사변과 11월 단발령이 시행되는 등 일제의 조선에 대한 침략 야욕이 드러나는 상황이 전개되자,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자 영남의 선비들과 더불어 상경, 을사조약반대 상소를 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 때는 이만도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1914년 11월 모친이 사망하자 영해의 관어대(觀魚臺)에 나아가 유서와 절명시를 남기고 바다에 투신하였다.
광복절 행사의 파행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후손들에게 이미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애국심을 고취하면서, 면면히 흐르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이어갈 수 있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동해바다는 어딜 가나 물이 깊고 푸르러 아름답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