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최성은 역
구름을 묘사하려면
급히 서둘러야만 하지.
순식간에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형상으로 변하기에.
구름의 속성이란
모양. 색조. 자세, 배열을
한순간도 되풀이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기억할 의무가 없기에
사뿐히 현실을 지나치고,
아무것도 증언할 필요가 없기에
곧바로 사방으로 흩어져버린다
구름과 비교해보면
인생이란 그래도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
제법 지속적이고. 꽤 영원하다
구름 곁에서는 바윗덩이조차도
의지할 수 있는 형제처럼
믿음직스럽게 느껴진다
그에 비하면 구름은 마치
변덕스러운 먼 사촌 누이 같다
인류여, 원한다면 계속해서 존재하라.
그 다음엔 차례차례 죽는 일만 남았으니.
구름에겐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낯설거나 이상스럽지 않다
너의 전 생애와
아직은 못 다한 나의 생애 너머에서,
구름은 예전처럼 우아하게 행진을 계속한다
구름에겐 우리와 함께 사라질 의무가 없다.
흘러가는 동안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23-2012.폴란드.시선집'끝과 시작'. 독일괴테문학상.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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